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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조선시대 양반의 여노비 대상 성범죄 처벌

sssllllls 2017. 10. 8. 16:20
조선시대 성범죄처벌은 엄중했습니다.

 

천민들이 양반댁 아녀자들을 겁탈?→참형 굿바이

미성년자 성범죄→교수형 굿바이

근친상간→굿바이데이

강간미수→ 장형 100대, 유배 1000리(?) 쯤의 처벌

화간(부부가 아닌 남녀의 성관계)→태형 80대

 

조선시대 양반이 계집종을 겁탈하면..

성범죄만큼은 신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걸로??

 

얼마 전 세종대왕의 성범죄처벌에 관한 기사를 봤는데

사극에 나오는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군요.

실제로는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 카더라..↓

 

11세 어린 아이를 강간한 사노 잉읍금을 교형에 처하다(태조 7년 윤5월16일).

형조에서 계하기를

"평해에 있는 죄수 김잉읍화(金仍邑火)는 8세 난 계집아이를 강간했사오니

율(律)이 교형(絞刑)에 해당합니다"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세종 8년 11월17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종26년 윤6월10일에 대신 김당 등이

왕에게 종친의 성폭행 사건에 대해 벌을 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왕실 종친인 고령감 이팽령이 개인노비 봉원의 딸 순금과 관계했다.

순금이 "여인이라 거역할 힘도 없어 어쩔수 없이 이틀 밤을 함께 했다"고 사헌부에 고소했다.

중종은 사건 조사 결과를 듣는 자리에서 "위력으로 간통하였다면 이 또한 강간이다"며 처벌을 하교했다.

 

15년 (1469) 좌명 1등공신 이숙번의 종 소비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주인의 이마를 칼로

내리쳤으나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무죄가 됨

기녀들 역시 동의 없이 겁탈하려 한다면 강간죄가 성립된다.

 

근데 고려~조선초엔 여성들의 권한이 높음.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 사료.

 

(박유가) "청컨대, 여러 신하, 관료로 하여금 여러 처를 두게 하되, 품위에 따라

그 수를 점차 줄일도록 하여 보통 사람에 이르러서는 1처 1첩을 둘 수 있도록 하며,

여러 처에서 낳은 아들도 역시 본처가 낳은 아들처럼 벼슬을 할 수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연등회날 저녁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여 따라갔는데, 어떤 노파가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첩을 두자고 요청한 늙탱이가 저 새끼다."라고 하니,

듣는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서로 가리키니 거리마다 여자들이 무더기로 손가락질하였다.

당시 재상 중에 부인을 무서워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건의를 정지하고, 결국 실행되지 못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왜,호란을 겪고 돈양반이 등장하고 유교사상도 조선내에

건국초와는 달리 이제 안정적으로 예법으로 정착했으니.. 이전과는 좀 달라졌을거라 생각.

조선시대 양반들은 '생사여탈권'이라고 노비들을 부려먹는 권한이 있습네다.

그 당시엔 유교사상에 의해 정절을 잃으면 인생의 패배자마냥 여자들이 떳떳하지 못합니다.

지금보다 더 성범죄에 수치스러워 고소는 외부인에 들키지 않는 이상 할 생각이 없을 듯. 

만약 고소를 할 조짐을 보이면 양반이 주딩이를 놀리지 못하도록 합법적으로 쥑일 수도 있고..

혹은 '강상의 윤리'라 해서 고소를 해도 계집종이 처벌받는 경우도 있음.

마을에 소문이 퍼져서 문제가되면 첩으로 삼으면 그만~ 그래서 홍길동이 태어나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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